한줄메모장

단편소설-- 소리로는 부족하여도...

성가대원들 2012. 5. 13. 08:08

어느 블로그에서 스크랩하였습니다. 읽으면 마음이 조금 찡~해진답니다.

 

소리로는 부족하여도

 

1

 

당신도 새벽 성가대에나 가입해 보면 어때요?

지난해 봄날 어느 일요일. 미사에 다녀 오던 아내가 성당주보에 난 새벽성가대원 모집공고를 그에게 보여주며 불쑥 내던진 말이다. 아마도 그가 그 당시 매번 새벽미사를 다니던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으리라. 아내는 오랜 조직생활에 젖었던 그가, 직장을 그만 두고 매인 데가 없는 것에 불안해 하는 것을 보고, 이왕 다니는 새벽미사에 성가대라도 하면서 소일거리를 찾는 것이 봉사활동도 되고, 그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듯 하다.

오세영이 전무로 근무하면서 사장과의 불화를 참지 못하고 회사 조직을 박차고 나온 홀로서기를 하기 시작한 것도 어언 2년이 흘렀다. 정년을 3 앞두고 연한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무려 29년이라는 직장생활 끝에 그만 처지라, 처음 6개월은 쉬고 있어도 누가 흠잡는 사람도 없었다. 좋은 직장에 있었고 좋은 경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다른 조직의 높은 자리로 있는 사람이 잠시 쉬는 것이라 고들 생각했고, 본인도 당당하게 놀았고 누구에게 눈치보일 것도 없었다. 마침 유행하던 광고피가 열심히 일한 그대 떠나라!’ 였으므로 그에 맞는 사람같이 보였고, 세영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곳 저곳 이력서를 넣기도 하고 유명 헤드 헌터사들을 통해 직장을 알선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세영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 가치과 세상이 생각하는 자기 자신의 활용가치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고, 그것을 느끼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년이 지나는 시점까지는 연대가 맞아 그러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도 했지만, 1년이 지나면서부터는 불안한 생각과 함께 자신도 없어지고 이제 다시는 직장생활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되었다. 하기사 40대들이 CEO 되는 세태에 50 중반이 중간임원자리를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간간히 CEO자리로 있는 직장이 있더라도 경쟁이 너무 치열했다. 이제는 홀로 독립하는 밖에는 다른 수는 없었다. 배운 도둑질이라고 외국계 투신회사에서 증권업무와 투자운용업무를 했던 경력을 활용하여, 여의도에 조그만 오피스텔을 얻어 1 투자자문회사 비슷한 것을 차렸다. 정식 투자자문회사 요건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들, 친지 그리고 본인이 퇴직하며 받은 퇴직금 등을 기초기금 삼아 비공식 투자 운용업을 시작하였으나 신통치 않았다.

아내와 두 딸들과 함께 주로 오전 11시 미사나 저녁 7시 미사를 함께 다니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그는 새벽미사를 을씨년스럽게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기왕 하는 종교 생활이라면 나 홀로 오솔길보다는 가급적 가족과 함께 하는 산책길이 더욱 좋다는 것을 그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아침 7시에 시작하는 미사이니 어찌 생각하면 새벽미사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했지만, 아침 7시까지 성당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6시경에는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했으므로 새벽미사라는 말이 맞기도 했다. 평일과 달리, 늦잠을 자고 싶은 일요일에 그리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하루 전부터 얼마간의 자기 절제가 필요한 일이었다. 피치 못해 토요일 저녁에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게 된다거나, 또는 TV 주말명화나 모처럼 보고 싶던 비디오들을 빌려 밤 늦게까지 보아야 했던 날은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다고 그가 특별히 성스러운 마음이 생겨 새벽미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새벽미사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실직하기 전 그의 습관과 관련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새벽잠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일에 대한 열정이 아니 회사 일에 대한 주인의식이 출근시간 9시보다 2시간 이른 7시에 그를 항상 출근 시켰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그를 새벽 길에 나서게 한 것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찍 일어나서 공연히 가족들의 안온함을 깨뜨리기도 싫거니와, 실직한 이후로 축 처진 그의 걸음걸이에 함께 하기 싫어하는 아내의 눈치에 지레 주눅이 들어, 가족과 같이 하는 자리가 어느 때부터인가 불편했던 그의 자존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새벽미사에 나가 앉아 있으면 마음은 평온했다. 그 이른 시간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노라면, 낮 미사에 나오는 사람들과는 표정부터가 다르고 맑아보여, 그 자신도 마음이 거룩해지는 것 같았다. 그들보다 신심은 부족할 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지난 일주일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모태신앙 이던 아내와 달리 종교가 없던 그는 결혼 후에도 한참을 세례 받지 않았다. 세례를 받기에는 그 자신이 너무 이중인격자인 듯 생각되어 섣불리 영세를 받겠다고 할 용기가 그에게는 없었다. 그는 결혼 당시 천주교인이 아니었으므로 아내와 결혼할 때 관면(허가) 혼배를 해야 했다. 일종의 조건부 결혼이다. 따라서 아내와 결혼할 때 신부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믿지 않더라도, 최소한 아내와 태어 날 자녀의 종교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겠다고 서약했으므로 그는 아내의 종교생활에 방해자가 된 적은 없다. 하물며 인간과의 약속도 반드시 지켜져야 하거늘, 하느님과의 약속을 어떻게 감히 저버릴 수 있는가라고 그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종교는 갖고 있지 않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는 무신론자는 아니고 범신론자 입장에 가까웠기 때문에, 특정한 종교를 갖지 않을 자유가 인정되는 만큼, 특정한 종교를 갖을 수 있는 자유도 존중 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고도 10여년이 흐른 뒤에야, 아내와 주위의 권면에 따라 세례를 받았다. 갑자기 어떤 계기가 있어 딱히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거부해야만 할 특별한 사유도 없었다. 그러기에는 아내와의 세월이 제법 되었고 또 그녀가 봉사활동 등을 통해 보여주는 종교생활이 보기에 좋았다. 세례를 받던 그때를 생각하면 세영은 지금도 식은 땀이 흐른다. 세영은 그 당시 40세였는데, 회사에서는 부장시절로 여러 중책들로 몹시 바쁜 시기였다. 6개월 정도 매주 한 번씩 평일에 참석해야 하는 교리교육에는 도저히 참가할 수가 없었다. 세영은 한가한 사람들이나 받는 교육이지 자기 같이 바쁘고 중요한 직책을 가진 사람들은 받을 수 없는 교육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3개월 코스로 진행되는 통신교리를 받았다. 정답이 포함되어있는 지문을 읽고 4지 선다형 내지는 간단한 문답형의 문제지에 답안을 작성하여 보내면 다음주 문제집과 함께 전주의 채점결과가 통보되는 방식이었다. 평가를 위한 시험 이라기보다는 내용을 숙지 시키기 위한 시험이었으므로 매번 거의 100점이었다. 3개월 후, 통신교리 수료증을 갖고 신부님을 찾아갔다. 70세도 넘어보이는 상당히 연로한 신부님이셨는데, 언제 세례를 주겠다는 말씀은 하지 않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 보시더니,

수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례를 줄 수도 있지만 다음 달부터 새로 시작하는 예비자 교리시간이 있는데 그 교육을 참가한 후 세례를 받으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세례를 받으면 매주 한번씩 주일미사에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니, 미사에 참석하는 셈 치고

“……”

세영은 황당했다. 바빠서 통신교리를 받은 사람에게 6개월 교리를 다시 받으라니 그렇게라도 교육을 받았으면 감지덕지할 일이지라고 세영은 생각하며 불편한 표정을 뒤로 하고 아무 대답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자기와는 인연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키로 했다. 그러다 몇일 후 슬그머니 오기가 생겼다. 무슨 일을 시작하면 결말을 봐야 하는 것이 그의 성격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이 있길래 그러는지 모든 것을 다 받아 본 후, 그때 가서 자기 스스로 결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6개월이 지났다. 남자나이 40세에, 각종 모임 등 바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3번 이상을 빠지지 않고 6개월을 참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세영은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6개월을 열심히 다녔다. 그 당시 교육을 받기 시작한 예비신자가 처음에는 약 120명쯤이었다가 최종적으로 출석률까지 합격한 사람은 약 80여명 되었는데, 종료식 후 마지막으로 다섯 사람씩 신부님 면담이 있었다. 드디어 세영이 앉은 줄의 다섯 사람이 방안으로 들어갔다. 노신부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질문 해오기 시작했다.

왜 세례를 받으려고 하시나요?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다음 사람이 대답했다.

“…집안의 화목을 얻기 위해…”

비슷한 질문을 차례대로 물어오다가, 세영 바로 옆에 앉은 사람에게 물었다. 그는 교육을

받던 예비 신자들 중 남자로서는 유일하게 세영과 비슷한 연배의 사람이었다. 그들은 교리시간마다 서로의 쑥스러움을 없애주기 위해 항상 옆 자리에 앉곤 했다.

지금까지 질탕하게 재미있게 잘 살다가, 그 나이에 새삼스럽게 영세는 왜 받으려고 하나요? 그냥 지금까지 살던 대로 대충 살지. 허허.

세영은 신부님이 잊었을 듯한 자기와의 옛날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또 한번 황망해야 했다. 자기에게 물은 것은 아니지만, 다음 차례인 자기에게 똑 같은 물음을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하고 당황했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답변할까를 궁리하다 보니, 정작 질문을 받은 사람이 무어라고 대답했는지는 듣지도 못했다. 그리곤 세영 차례가 되었다.

세례를 받겠습니까?

세영은 잠시 머뭇거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아니오라고 대답하리라고 준비했던 순간이었던가. 

“… 네.

신부님은 더 이상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아니오라고 대답했더라면 구태여 세례를 주지 않았을 텐데, 왜 자신이 얼굴이 빨게 지며 했는지는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세영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세례를 받은 세영은   아직도 자기가 진정한 신앙인인가에 대해 늘 자신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아내가, 다소 신앙에 열성적인 사람이나 할 것 같은 성가대 가입을 제안한 것이다.

이 나이에 쑥스럽게 합창단은 무슨 그리고 악보도 볼 줄 모르고 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합창단이라고는 근처에도 가 본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성가대에 들어 갈 수 있겠어. 당신도 참.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요.라고 신경질적으로 말하면서, 세영은 아내가 건네 준 주보를 들여다보았다.

 

<아버지 성가대 모집>

새벽을 여는 일명 요셉 성가대에서 본당 아버지들을 대상으로 추가 신규단원을 모집합니다. 연령과 경력제한은 없으며 신실한 마음으로 열심히 성가를 부를 수 있는 분이면 됩니다. 봉사대상미사는 일요일 새벽미사 입니다. 희망자는 매주 목요일 저녁 8시까지 다윗 연습실로 오시면 됩니다. 많은 분의 내방을 환영합니다.

 

세영은 회사생활 당시 각종 회식자리에서 좌중을 휘어잡던 일, 뒤풀이로 있었던 노래방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자기에게 보내던 찬사를 떠올리며, 어찌 생각하면 노래라면 못 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항시 새로운 도전을 즐겨 하는 그로서는 평생 해보지 못한 합창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기도 했고, 어차피 가는 새벽미사에서 성가까지 부른다면 봉사도 된다고 하지 않는가. 또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기도 중에 가장 아름다운 기도가 성가라고 들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났다.

 

2

 

새벽미사를 다녔지만 성가대의 노래에 특별히 신경을 쓰며 귀 기울이지 않았던 세영은 새벽 성가대 합창이 아무나 합류하여 하나의 선율을 여럿이 같이 노래 부르는 제창과 같은 것 인 줄 알았다. 그리고 비전공자인 평범한 아버지들로 구성되어 그저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듯 부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가입하여 알고 보니 남성 4부 합창단이었다.

세영은 초보인 점이 인정되어 주 멜로디인 소프라노 파트로 배정이 되었다. 남성 4부였으므로 소프라노와 알토를 맡는 파트도 남자여야 했다. 회원이 약 20명정도 되었으나, 그나마 일들이 바빠 평균 15명정도가 나오면 잘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떤 때는 파트별로 성원이 안 되어 합창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30대는 별로 없고 40대와 5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60대가 서너 명 있었다. 새벽잠이 없어지는 세대들이 주류라고 나 할 까? 처음 성가대를 경험하는 세영과 김 베네딕도라는 형제를 제외하면 모두들 성가대를 10여년 이상씩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전공이 음악이 아니더라도 관록들이 있었다. 또 심지어 악보를 잘 못 보던 사람들도 자주 노래하는 곡은 음정을 거의 외어 노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 얼마간은 보조를 못 맞추는 듯 싶어 세영은 그저 눈치만 보고 미안해 하기만 했다. 그 눈치를 지휘자가 알고는 수시로 세영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첫소리를 동네 아저씨들 노래하듯이 막걸리에 젖은 탁한 목소리를 내면 안 되고, 곱고 맑고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젖을 열고 소리가 입안에서 공명이 되도록 노력하세요. 그렇게 하면 소리가 작아도 멀리까지 들린답니다.

합창은 솔로 하듯이 자기 목소리를 너무 강하게 내면 안되고, 또 자기 성량에 반만 낸다고 생각하며 부르는 것이 좋지요.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타인의 노래가 들려야 하고 그래야 화음을 잘 낼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타인의 목소리에 자기의 목소리를 살며시 얹는다고 생각하며 불러야 됩니다.

세영이 성가대에 가입한지도 벌써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연습할 때마다 그는 자신이 없었다. 애당초 문외한인데다가 뛰어난 소질이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혼자 목소리를 내는 경우에는 더욱 겁이 났다. 오히려 모를 때는 나름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나 지휘자인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세영은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녀는 원래는 성악을 전공한 사람인데 아이들을 다 키우고는, 다 늦게 다시 종교음악대학원을 다니며 최근에는 파이프 올간을 배우기 시작하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다시 키우고 있는 중 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권위가 있어 보였다. 자그마하고 여린 여자가, 말 안 듣고 다루기 힘든 예비군 같은 아저씨들로 구성된 남자 성가대를 지휘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도력을 보이는 데 있어서는 매섭고 단호한 면이 있었다. 아름답기도 한 그녀가 잘못된 점을 지적할 때면 나이에 걸 맞지 않게 어린아이처럼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여 세영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몰랐다. 그런 그녀가 행여나 세영이 포기할까 봐, 여러 가지로 배려하곤 했다. 별로 잘 하지도 않았는데도 때로는 격려도 했다가 때로는 세영의 목소리가 미성이라는 등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매사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한번의 춘하추동을 겪고 나니 문외한이던 그도 합창단이라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이제 몇일 후면 새로이 건축된 성당의 입주를 기념하는 음악회가 있을 예정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비교적 다양한 경험을 한 그였지만, 노래 부르는 공식무대라고는 처음 서 보는 세영은 신인가수가 데뷰 무대에 서듯이, 생각만 해도 설레고 한편으로는 조금 흥분되기도 했다.

 

3

 

음악회를 2주 남기고 일주일에 4번씩 집중적으로 연습하던 어느날. 3시간여의 고된 연습들을 마치고 오랜만에 생맥주 집에 모여 앉았다. 베이스를 맡고 있는 이동명이 한마디 했다. 모두들에게 세례명을 따라 베드로 형님이라고 불리는 그는 60대 중반으로 성가대에서 최고 연장자였으며 신심이 깊고 유서있는 구교 집안의 사람이었다. 몇 년 전 다니던 건설회사에서 정년 퇴직하고는 성가대에 더욱 열심이었다. 여러 성당에서 각종 성가대를 30여년 넘게 해 온 그는 이 성당에서 요셉 성가대라는 아버지 성가대를 처음으로 창안한 초기 멤버들 중의 한 사람이면서, 성원이 안 되 몇 차례 성가대가 해체될 번 했던 위기를  굳굳히 지켜온 사람이다. 11시에 하는 남녀혼성 성가대는 성원이 잘 되었으나, 요셉 성가대는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야 하므로 성원이 잘 안 됐다. 일요일 새벽 미사 전에 한시간 연습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섯 시에는 일어나서 여섯시까지는 성당에 와야 하고, 또 목요일 저녁도 2시간 연습을 해야 하므로, 직장들이 있는 중년 남자 단원들을 모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영이 가입한 후 여러 명이 추가 가입했다. 요셉 성가대 단원들은 주로 40대였으므로 50대인 세영은 노장 축에 들었다. 그래서인지 베드로 형님을 비롯하여 단원들도 관심을 갖고 대접도 해 주는 편이었다.

오세영 요셉 형제가 들어온 후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단원들도 많이 늘고, 출석률도 아주 높아졌습니다. 더구나 실력 있는 배영화 그라시아 지휘자가 온 후로는 노래의 수준도 매우 높아졌습니다. 이 기회를 이용해 요셉 성가대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성가대의 요체는 많은 이의 참여 그리고 노래를 함에 있어 협동과 자기 절제이지요. 앞으로 몇 번 남지 않은 연습에 열심히 참석하여 훌륭한 음악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러면서 이동명은 작은 수첩을 하나 꺼내 놓았다.

이것은 여러분이 그 동안 각자 연습에 참석한 출석 기록부 입니다. 한 번 자기기록을 살펴보면 자기의 성실도를 알 수 있지요.

 거기에는 지난해 1년 동안 단원별 연습일자별 참석 및 지각현황이 일목요연하고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모두들 아연해 했다. 언제 그것을 기록했을까? 기록할 의무도 이유도 없었던 것 같은데. 세영은 맨 뒷자리에 앉곤 했던 그가, 가끔 무언가 끄적거리던 기억을 떠올렸다. 누군가가 말했다.

아이고 출석 체크 하는 하느님이 여기에도 계시네. 하며 킥킥 웃었다.

 그는 웃음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는 합창단과 성가대는 조금 다르다고 봅니다. 일반 합창단은 전공자들만이 가질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음악성만이 요구되고 강조되지만 성가대는 우리만이 노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이므로 음악성과 함께 설사 소리로는 부족하더라도 성심을 다하는 노력이 중요하지요.

그라시아 지휘자가 말을 이었다.

베드로 형제님 말씀에 몇 마디 덧붙이고 싶습니다. 소설이든 시든 글은 쓰여지면 바로 독자가 직접 읽습니다. 그림도 미술가가 그리면 관람객이 직접 감상하지요. 하지만 음악은 좀 다릅니다. 작곡가가 음악을 작곡했다고 해서 청중이 바로 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연주자나 지휘자가 그 곡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악기나 목소리를 통하여 청중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작곡가의 의도를 잘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주자와 악기, 지휘자와 합창단이 얼마나 혼연일체가 되느냐가 매우 중요하지요. 그에 따라 같은 곡이라도 청중의 느낌은 180도 다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악기나 마찬가집니다. 연주자가 얼마나 좋은 명기를 가지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여러분이 저의 명기가 되어 얼마나 일치되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야기 했다.

또 다른 점은 글이나 그림은 작가의 단 한번의 우연성과 1회성으로 창작되지만, 음악은 같은 곡이라도 지휘자, 연주자, 성악가, 합창단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또 그 날의 분위기등과 조화된 연주와 연출을 통해 무한한 우연성의 반복이라는 점이지요. 따라서 그때마다의 감동이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우연성을 중시해 기계음을 듣는 것보다는 현장성을 중시해서 라이브 공연만 듣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이번 저희 공연이 그렇습니다. 부단한 연습과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그 날의 최고의 명기가 되고 최상의 연주가 될 수 있는 우연성은 정성이 닿아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연습에 빠지지 않고 공을 들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형제님 출석부 만세!  하하.

단원들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영도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연습날 몇 번  빠진 것이 갑자기 미안해졌다. 그 날 그 모임이 있은 이후, 마지막 2주동안의 연습에는 아무도 빠지는 사람이 없었다. 그날 그녀는 마지막 농담으로 웃음을 빚어냈다.

술들 많이 들지 마세요. 여러분의 몸과 여러분의 목은 악기이므로 아끼고 소중히 다뤄야 합니다. 호호.

베이스 파트를 맡은 박  율리아노 형제가 걸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베이스 맡은 사람들은 술로 목을 더 축이고 담배로 목을 더 탁하게 해야 목소리가 걸걸하게 나오지 않겠습니까?

옳소 하며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4

 

 일개 성당의 음악회 치고는 사람들이 꽤나 붐비었다. 오늘은 3년 여의 공사 끝에, 드디어 그들의 새로운 성전을 완성한 기념으로 성당봉헌 기념을 위한 음악회가 있는 날이다. 시골장터의 잔치 분위기처럼 시끌 벅적 한 것은 그 동안 비닐성당의 가건물에서 현대식 건물의 성당을 갖게 됐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비록 아마추어이지만 4개나 되는 합창단이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하여 공식무대를 열게 됐다는 자그마한 흥분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성당에는 어린이 성가대, 청년 성가대, 성인 성가대 그리고 아버지성가대가 있었는데, 어린이, 청년, 성인성가대가 있는 것은 보통 어느 성당이나 다름이 없었으나, 특이하게도 요셉 성가대라는 이름의 아버지 성가대가 있다는 것이 다른 성당과 조금 달랐다. 성인 합창단이라는 점에서 성인 성가대와 아버지 성가대의 차이점은 없었으나, 굳이 차이점을 이야기 한다면 성인 성가대는 남녀 혼성 4부 합창단이고, 아버지 성가대는 남성으로만 구성된 4부 합창단이었다. 그리고 전자가 상대적으로 30대의 젊은 나이와 학창시절 음악을 전공한 자들로 구성 되 있다면, 후자는 40-60대의 연령에 대부분 음악 비전공자들로서, 심지어는 악보도 잘 못 보는 인원들로 구성 되 있다는 점이었다.

 5월의 날씨는 파랑과 신록이었다. 해가 길어 저녁7시 였지만 밖은 아직도 환했다. 성당 바로 뒤편으로는 정발산이 그 이름모양 푸른 솥 뚜껑을 엎어 놓은 듯 나지막이 자리하고 있었고 호수 공원쪽으로 떨어지는 석양이 불그스레한 빛으로 온 하늘을 물들이면서 그 빛의 마지막을 성당 십자가 위에도 축복하고 있었다.

 1부는 어린이 성가대와 아버지 성가대 그리고 휴식시간을 잠깐 갖고, 2부는 청소년 성가대와 성인 성가대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어린이 성가대의 앙징 맞은 공연이 끝나고 요셉 성가대의 순서가 되었다. 요셉 성가대는 순록의 계절에 맞추어 초록바탕에 백합꽃 빛깔의 휘장을 한 수사복 같은 단체복을 입었는데, 넉넉한 몸집들에 그 옷을 걸치니 20여명 남짓한 인원이었는데도 무대가 꽉 차 보였다. 무대는 자그마한 초록 동산이었고 군데군데 백합꽃의 군무가 만발한 듯 하였다. 그 숲속에서의 풍경소리를 주모경으로 시작하였는데, 라틴어로 된 주모경을 그레고리안 성가로 노래하니, 어린이성가로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일순간에 일신됐다. 무식한 아버지 성가대의 시작으로는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굵직한 남성들만의 그레고리안 성가는 음악을 모르는 세영이 들어도 언제나 신비롭고 경외로웠다. 그리고는 애덕과 사랑이 있는 곳( Ubi caritas et amor) , 영원한 사랑, 다함께 노래하세(Vive LAmour) 3곡을 연속적으로 불렀다. 세곡 모두 아름다운 곡이지만 소화해 내기가 쉽지 않은 곡이다. 특히 애덕과 사랑이 있는 곳은 폴리포니(polyphony) 다성음악의 정수 중의 하나였다. 노래 전체에서 4부 화성이 신묘하게 어울러져야 하지만, 특히 끝 부분의 길게 끄는 ~~멘 7소절은 5/8박자로 시작해서 2/4, 6/8, 2/8, 3/4박자로 박자가 변화무쌍하게 변하면서 불협화음의 화음을 소화해 내야 하는 곳이다. 세영은 노래를 하며 곡을 지휘하는 그라시아의 표정을 보았다. 그녀는 연습할 때, 만족하면 엷은 미소를, 불만스러울 때는 화난 표정을 지었으므로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성가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아닌지 이내 알 수 있었다. 애덕과 사랑이 있는 곳( Ubi caritas et amor)을 지휘하며 중간중간 몇 번 미소를 지었다. 어려운 곳을 잘 넘어갔다는 의미이리라. 그런데 마지막 7소절을 끝내면서 세영은 언뜻 지휘자 그라시아 눈가에 비친 눈물을 보았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표정이었다. 그 곡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나왔다. 박수를 선도하는, 음악을 좀 안다는 사람들의 박수가 끊이지를 않았고 그 뒤를 청중들의 박수가 또 끝없이 이어졌다. 세영은 그 박수 소리를 들으며 한번도 보지 못했던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가만히 살피니 옆에 있는 베드로 형님도 안드레아, 베네딕토, 토마, 율리아노, 토마스, 라파엘, 비오, 실베리오, 후란치스코 형제도 눈자위가 젖어있었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다른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들 감격해 하는 듯 했다.

어디 선가 단원들이 매번 드리던 기도소리가 들렸다.

소리로는 부족하여도, 서로 사랑하며 화합하여 주님께 올리는 이 성가가 아름다운 영혼의 소리가 되어 미사에 참례하는 모든 교우들에게도 위로와 안식이 되게 하소서

 

5

 

 음악회의 감동이 끝나고 첫번째 일요일 새벽미사의 연습시간 이었다. 하나 둘 단원들이 모여드는 시간이었는데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는 큰소리로,

이게 뭐지? 하며 피아노 옆 바닥에서, 예쁘게 포장이 되어 보자기가 덮여진 바구니를 책상위로 올려 놓았다.

보자기를 벗겨봐. 뭔지.

음료수잖아?

거기에는 합창단원의 숫자보다 조금 여유 있게 각종 음료수가 담아져 있었다.

이거 우리 새벽에 수고한다고 누가 먹으라고 갔다 놓았구먼.

아냐, 드디어 요셉 성가대 펜클럽 아줌마 부대가 생긴 게 틀림없어. 하하하.

, 여기 쪽지도 있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요즘 힘들어 하는 남편에게 미소를 찾아주고 자신감을 회복시켜준 지휘자님과 성가단원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자랑스런 합창단원을 남편으로 둔 아내 - >

서로들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가 모두들 허공을 한번 바라들 보았다. 세영이 보기에는 모두들 자기 아내를 허공에 그려보고 있음에 틀림이 없었다.

세영은 십 수년 전의 노 신부님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머리 속 지식에 불과한 교리보다는 마음을 다한 행동이, 그리고 알량한 음악지식보다는 부단한 연습을 통한 겸손이 진리에 더 가까울 수 있다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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